심리학

융의 심리학적 유형 - 일반적 태도(3)

웃쨔웃쨔 2022. 7. 15. 14:50

무의식적 태도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주관적인 것을 아주 무시하고, 객관적인 상황에 따라서만 행동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건전한 외향형에서는 항상 적당한 보상을 내향적인 작업을 통해서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장기인 객관적 현실에 대한 참여가 건설적이고 유익한 방향으로 실시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외향적인 태도가 지나치게 일반적으로 과장되면 외향적이지 않은 것은 모두 의식에서 배제되어 무의식에 억압되고 이것이 오랫동안 지나치게 지속되면 의식의 태도와는 다른 여러 가지 특이한 무의식적인 경향이 생기게 되고, 뒤에는 이것이 의식을 자극하게 된다. 이런 경우 무의식은 극단적인 내향적 경향을 띠는 것이 보통인데, 무의식에 억압된 내향적 경향은 분화 발달할 기회를 잃게 되므로 억압이 오래도록 계속되고 의식에서 그것이 기능을 발휘하는 것을 막으면 막을수록 미분화된 원시적 구체적 특징을 나타내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그런 내향적 경향은 무의식의 가장 밑바닥의 본능적인 충동에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건전한 주체적 판단이나 이에 입각한 행동이 아니고 유아적인 자기중심적 이기적인 경향과 같은 미분화된 내향성을 강하게 띠게 되는 것이다. 의식적인 외향적 태도가 완전하면 완전할수록 무의식적 태도는 유아적이고 구체적이다. 극도의 객체 지향성은 결과적으로 미구에 극도에 주관적 견해나 욕망에 의하여 지배당할 바탕을 마련하게 된다. 무의식의 경향은 단순히 어린애 같은 유치함을 넘어서는 무자비한 이기주의와 프로이트가 말하는 근친혼에의 욕망에까지 번지게 된다. 그런 뜻에서 구체적이다. 외향형은 현재와 외적 현실에 집착하는 나머지 과거와 역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고 누가 뭐라고 했는지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반박한다. 미국의 프래그머티즘은 상당히 이와 같은 외향성을 띤 사상이다. 그런데 이렇게 의식적으로 끊어버린 과거와 역사는 의식에서는 없어지지만, 무의식에서 연명하여 그 개체를 포함한 전 인류의 과거가 하나의 요청으로서 의식의 현재 주의에 대립하게 된다. 이 점에 대해서 융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의 전 역사와 인류의 역사를 마음속에 지니고 있다. 역사적 요소는 그 현명한 운영을 절실히 요청한다. 지금까지의 것은 어떻게든 새로운 것 가운데서 발언 될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체험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객체에의 전적인 동화는 억압된 소수자인 지금까지의 것,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원초적인 것의 항의에 부딪히게 된다. 또한 무의식은 오직 욕구일 뿐이라고 프로이트가 주장한 것은 사실 극단적인 외향형의 무의식 경향에 부합된다고 융은 말한다. 이렇게 외향형의 의식적 태도에 상반되는 무의식적인 경향이 적절한 대상의 정도를 넘어서서 의식에 대하여 거의 적대적인 반작용을 하기 시작하면, 외향형 자신도 전혀 깨닫지 못한 가운데 의식의 태도와는 모순된 무의식적 경향이 의식 표면에 나타나 그의 행위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객관적 규준에 의하여 공정 무사하게 사무를 처리하며 항상 남과 사회를 위하여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때때로 내 마음대로 무엇이든지 해치우려는 끝없는 아집과 횡포를 부려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겉으로 보아서는 그 사람의 어느 것이 의식적 태도이고 어느 것이 무의식적 태 오인지를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누가 무슨 유형에 속하는지를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의식의 외향적 태도가 무의식의 열등한 내향적 태도에 어떻게 동화되어 가는가를 융은 한 출판사 주인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 사람은 20년 동안 남의 점원 노릇을 하며 고된 일을 해오다가 독립하여 장래가 유망한 회사의 경영주가 되었고, 그의 회사는 점점 번창하여 이 사람의 사적인 관심은 전적으로 사업을 위해서 희생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회사의 확장과 경영이라는 외부적 작업에 의해서 억눌린 내적인 관심은 무의식에서 대상적으로 강해져서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이 점차로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어린 시절에 그는 그림을 좋아했는데 그는 이것을 자기 사업에 도입해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그림의 취미를 따로 키워가지 않고, 그가 내놓은 책들의 예술적인 장정을 꿈꾸게 되어 이 꿈을 실현하려고 그의 유치한 취미에 맞게 책의 모양을 내기 시작했는데 그만 수년 후에 그 때문에 회사가 파산하게 되었다. 이러한 예는 똑같은 경우는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 현대의 많은 기업가에게서도 발견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융은 이 예를 통해서 외향형의 객관 위주의 태도가 극도에 다다를 때는 무의식의 주관적인 기호나 관심이 그대로 의식의 태도에 흡수되어, 그것이 마치 객관적인 목적에 이용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됨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외향형에서는 객관적인 목적을 만족시키기에는 의식의 내향적 경향이 열등한 상태에 있으므로 대게 그러한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열등 기능이 자기도 모르게 우월기능의 탈을 쓰고 우월기능처럼 행세하게 되는 것이다. 열등 기능이 자기도 모르게 우월기능의 탈을 쓰고 우월기능처럼 행세하게 되는 경우인데, 이와 같은 혼동은 자아가 무의식의 경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것을 모르고 있을 때 잘 생기는 현상이다. 의식의 외향적 태도가 극도로 일방적일 때 무의식의 태도가 하나의 대극을 이루어 의식의 억압 정도에 따라 차차 그 세력을 강화하여 의식에 영향을 줄 때, 앞에서 말한 예처럼 자아의 무의식과의 동화 현상이 일어나거니와, 무의식의 경향 의식을 완전히 지배하여 의식의 기능을 마비시키면 여러 가지 신경증적 증상을 나타내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분방한 욕망과 허무감 사이를 헤매지 않을 수 없게 되며, 유치하고 원시적인 경향을 지나치게 억압하면 노이로제 말고도 마약 나온 등을 일으키게 되고 때로는 갈등 속에서 자살하는 경우도 생긴다. 융은 이러한 요소의 억압이 어쩔 수 없이 문화의 이름으로 실시되는 경우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